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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행 노트 _ 계양산

mizig 2020. 6. 30. 16:08

인천 여행 노트

첫발을 딛는다. 어디부터 내가 가야 할지 좀체로 선뜻 나서지지 않았다. 키보드를 부여 잡고 몇달을 두들기다가 가장 많이 아는 곳부터 시작하자. 라는 마음에 계양산으로 정했다. 

인천은 항구 도시 이다. 물론 섬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백제 땅이였을 때가 가장 길게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이 중에 계양산은 내륙, 뭍에서 제일 높은 산이기도 하다. 

웅진군과 강화도가 인천에 포함 되면서 제일 높은 산은 마니산 이기도 하지만 내가 밟은 뭍산의 첫 산은 계양산으로 정했다. 

하지만 기억에 조차 남아 있으려나 부루주아(롯데 그룹)의 역습으로 이 계양산은 몇년 전까지만해도 골프장으로 파혜쳐 질뻔 했다. 그 자욱은 아직 남아 있지만, 없애려 한참을 지우개로 지우고 있다. 

지우개의 흔적은 계양산 연무정에서 현재의 계양산성 박물관으로 말 할수 있다. 국내 첫 산성 박물관이지만 그런데로 국궁을 쏘던 연무정 건물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오전 9시~오후 6시, 성인 1000원의 관람요를 받는 곳으로 20년 5월 29일이 오픈일이였으나 아시다시피 코로나로 개관식이 미뤄진 상태이다. 

박물관은 계양산성실과 일반 다른 산성실 역사관, 카페테리아 로 나뉘어 있으니 좋을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내 여행지의 한 모퉁이 일 뿐이였다. 

왜냐면 계양산성 발굴시 나왔다는 논어가 쓰여진 목간이 귀중한 걸로 표시 되었건만 후대에 누군가 쓸수도 있을 것을 모르는 것은 그냥 모르는 정도로 남겨 둬도 좋치 않을까?

계양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는 산과 마찮가지로 골과 골 사이로 불리워진 많은 등산 코스가 있다. 

상세하게 알아보자면

산의 이름은 고려 초기 수주악(樹州岳), 고려 의종 이후 안남산(安南山)으로 불리다가 고려 고종 때 계양도호부가 설치된 후 현재의 계양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으나, 이들 나무는 인천 일대에 자생하지 않는 종이어서, 실제로는 계양도호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으로 표기하였다. 

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 내탁식(內托式)에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산의 서쪽에는 조선 고종 때 해안방비용으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를 따라 축조되어 있었다.

집수정 바닥에서 《논어》 〈공야장〉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목간이 출토 되었는데, 5각형의 각 면에 《논어》의 구절이 먹으로 쓰여 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로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가 관보 제13호로 계양산 전체를 공원으로 지정하였다.1988년에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형광색은 인천 둘레길 코스 이면서 계양산 둘레길 코스 이다.

 

일반적인 등산 코스로는 계산역에서 박촌역에서 계양역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다.

 

보통 산은 8번 정도 다녀봐야 그 산에 관해서 음 다녀봤어 라고 할수 있다. 

 

이 계양산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질수 있다. 

 

내 기억엔 10년 전의 모습과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후의 모습이 계양산을 통해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언제인가 골프장이 될뻔한 이 산이 계양산성이 남아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 한것처럼, 밝고 맑은 날에 북한산이 보이는 것처럼 밖으로는 서해의, 그리고 강화가 보이는 모습에서 처럼, 없었던 아라뱃길이 보이는 이 산에선 앞으로의 10년 후는 전혀 상상할수 없을 것이다. 

 

지도상에는 표시 되지 않는 저 골짜기 에서는 정말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다. 

 

붓당골을 넘어 이프고개를 좌로 해 가다 보면 목상동 솔밭이 널찍히 보일 것이다. 아마도 이글을 읽고 간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곳에 한자리 잡고 앉아 목을 축이고 쉬어가는 혹은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계양산이란 곳에는 4곳 정도의 약수터가 존재 했었을 것이다. 알려진 무당골 약수터 (터만 남음), 경인여대 후문 상 약수터 (2년 전쯤 패쇄), 둘레길로 가다보면 너덜 바위 지대 바로 전에 농수로 쓰이는 약수(먹을 만함, 수질 검사 없음), 그리고 듣기만한 계양역에서 올라오는 길의 빈대떡집 약수터 (듣기만 함)  정도 이리라...

 

지금은 비가 좀 와야만 볼수 있는 목상동 솔밭 계곡이 여름이라면 발 한번 푹 담가 봄직 할 것이다. 

 

4년 전쯤엔 분명 잠시 쉬는 다리 위로 도마뱀 한마리가 있었지만.. 요즘은 못밨으니.. 사라졌나 아쉽게도 나만 발견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야간 산행으로 오른 그곳에선 불질을 했었고 정상보단 헬기장에서 모여 밥을 먹던 기억이 있었으나 지금의 계양산은 금지가 되어 버려서 섭섭하다고 말할수 있지만. 지켜야 한다면 한다. 

 

 

 

 

#계양산#인천산행#인천여행